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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서 뼈저리게 느낀 '각하, 기각, 인용'의 무게

틈새일기 2025. 3. 20. 09:49

그날의 법정은 한겨울 냉동고보다 차가웠다. 판사의 메마른 목소리가 차가운 법정에 울려 퍼졌을 때, 내 심장은 마치 거대한 망치로 두들겨 맞은 듯했다. "원고의 청구를 기각합니다." 단 한 문장, 여섯 글자에 5년의 싸움이 무너졌다. 이게 바로 법원의 냉혹한 현실이다. 각하, 기각, 인용 - 이 세 단어는 누군가에겐 그저 딱딱한 법률 용어지만, 당사자에겐 인생의 분기점이 되는 말들이다.

여러분은 이 세 단어의 진짜 의미를 아는가? 법원에서 내뱉는 이 짧은 단어들이 어떻게 사람의 운명을 바꾸는지 경험해 보았는가? 나는 7년간 법원을 드나들며 이 단어들의 무게를 온몸으로 느꼈다. 그 경험을 여러분과 나누고자 한다.

각하(却下) - 문턱에서 거절당한 서류들의 무덤

각하는 법원이 당신의 청구를 내용도 보지 않고 "문제가 있어서 심사할 가치도 없다"고 말하는 방식이다. 마치 클럽 입구에서 드레스코드를 이유로 거절당하는 것과 같다.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형식이 맞지 않으면 문전박대.

상상해보자. 갑이라는 사람이 임대한 원룸에서 나간 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집주인이 "벽지를 훼손했다"며 보증금 반환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갑은 법원에 소액재판을 신청했다. 하지만 부동산 소재지 관할이 아닌, 자신의 현재 주소지 법원에 소장을 제출했다는 이유로 각하 판결을 받았다. 법정을 나오는 갑의 표정에는 허탈함이 가득했다. 단순한 절차적 실수 하나가 정의를 구하는 길을 완전히 막아버린 것이다.

또 다른 가상 예시를 들어보자. 을이라는 여성이 횡단보도를 건너다 차에 치였다. 병원 치료를 받은 후 보험금을 청구하려 했으나, 법정 청구기간(3년)이 지났다는 이유로 각하됐다. 을은 오랜 치료 기간 동안 법적 기한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고 한다. 시간이라는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혀 좌절하는 을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법은 냉정하게 "늦었다"고만 말할 뿐이다.

이렇게 각하는 소송의 문턱을 넘지 못한 사람들의 눈물로 채워진 강이다. 연간 약 32만 건의 민사소송 중 약 15%가 각하로 끝난다고 한다. 대한민국 법원에서는 매일 약 131건의 각하 결정이 내려지는 셈이다. 그 마음은 누가 달래주나?

기각(棄却) - 심사는 했으나, 당신 말은 틀렸소

기각은 각하보다 한 단계 더 들어간 거절 방식이다. "네 말을 다 들어봤는데, 그래도 넌 틀렸어"라고 법원이 선언하는 것. 적어도 내용은 검토 받았다는 위안(?)이 있지만, 결과는 같다. 패배.

상상해보자. 병이라는 아파트 거주자가 위층에서 흘러온 물 때문에 천장과 벽지가 모두 망가졌다. 병은 위층 주민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6개월간의 재판 끝에 기각 판결을 받았다. "누수의 원인이 피고의 행위로 인한 것이라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판결문을 받아들고 병은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을 것이다. 눈으로 직접 본 현실과 법원이 인정한 현실 사이의 간극이 이렇게 클 수 있다니. 벽은 계속 젖어들고, 법적 해결책은 사라졌다.

또 다른 가상 예시를 살펴보자. 정이라는 사람이 인도에서 자전거를 타다 웅덩이에 바퀴가 빠져 넘어져 다쳤다. 정은 도로 관리 책임이 있는 지자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파손된 인도 사진까지 증거로 제출했지만 기각 판결을 받았다. 판결 이유는 "일반적인 주의의무를 다했다면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장애물"이라는 것. 법정을 나온 정의 표정에서 절망이 보였을 것이다. 그의 고통은 실재했지만, 법원은 인정하지 않았다.

세 번째 가상 예시를 들어보자. 무라는 아파트 경비원이 부당해고로 관리사무소를 고소했다. 7년 동안 성실히 근무했지만, "근무태도 불량"이라는 모호한 이유로 해고됐다. 무는 동료 증언까지 확보했지만, 결국 기각 판결을 받았다. 판사는 "사용자의 합리적 인사권 범위 내의 결정"이라고 판단했다. 법이 보호해주지 못하는 약자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인용(認容) - 기나긴 터널 끝의 작은 빛

인용은 드디어 법원이 "당신 말이 맞습니다"라고 인정하는 것. 극적인 반전의 순간이자, 억울함을 씻어내는 단어다. 하지만 이것조차 완전한 승리를 의미하지 않을 때가 많다.

가상의 인용 사례를 살펴보자. 금이라는 소비자가 인터넷 쇼핑몰에서 구매한 노트북이 광고와 달리 심각한 결함이 있었다. 금은 소비자보호법에 근거해 소송을 제기했고, 6개월의 기다림 끝에 법원은 그의 청구를 인용했다. 하지만 판결은 위약금을 제외하고 청구액의 70%만 인정했다. 게다가 판결 이후에도 환불받기까지 3개월이 더 걸렸다고 가정해보자. 금의 얼굴에 인용 판결의 기쁨이 스쳤을 테지만, 그것은 해피엔딩이 아닌 또 다른 싸움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두 번째 가상 예시를 생각해보자. 신이라는 노인이 아파트 계단에서 넘어져 골절상을 입었다. 계단의 조명이 고장 난 상태였고, 신은 관리소의 안전 관리 소홀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해 인용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그 사이 신의 건강은 더 나빠졌고, 받은 보상금은 모두 병원비로 나갔다고 상상해보라. 법적으로는 이겼지만, 삶에서는 이미 많은 것을 잃은 후였다.

세 번째 가상 예시는 소규모 가게 주인 임의 이야기다. 프랜차이즈 본사의 부당한 계약 조건(과도한 로열티, 강제 인테리어 변경 등)에 맞서 소송을 제기했고, 2년 만에 인용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그 기간 동안 가게는 이미 문을 닫았고, 임은 빚더미에 앉았다. "이겼다"는 판결문을 들고도 웃지 못하는 임의 표정이 그려진다. 늦은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는 말이 가슴에 깊이 새겨지는 순간이다.

각하, 기각, 인용 - 그 너머의 현실

각하, 기각, 인용. 이 세 단어는 한국 사법부가 당신의 인생에 던지는 주사위와 같다. 2023년 통계에 따르면, 민사소송 1심에서 완전한 인용률은 약 26%에 불과하다고 한다. 나머지는 부분 인용(약 29%), 기각(약 30%), 각하(약 15%)로 나뉜다.

법원은 무려 5,000여 명의 판사와 3만여 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연간 예산이 2조원을 넘는 거대 조직이다. 그러나 이런 거대한 시스템이 과연 개인의 아픔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손에 든 망치가 크면 모든 문제가 못으로 보인다는 말처럼, 법원에게 모든 분쟁은 그저 처리해야 할 '사건번호'일 뿐이다.

여러분이 언젠가 법정에 선다면, 이 세 단어의 무게를 실감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깨닫게 될 것이다. 법은 정의를 실현하는 도구이지만, 그 도구가 항상 완벽하게 작동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는 말이 있지만, 법정에서 더 우러는 것은 오히려 눈물이다. 그 눈물 속에 각하, 기각, 인용이라는 세 단어가 무겁게 떠 있다. 당신이 이 글을 읽으며 법과 정의에 대해 잠시나마 생각해볼 수 있었다면, 내 경험은 헛되지 않은 것이리라.

"세상에 완벽한 정의

란 없다. 다만 부정의에 맞서 싸우는 용기만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