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상업용 원자력발전소이자 처음으로 영구정지된 고리 1호기가 마침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는 최근 고리 1호기에 대한 해체 계획을 최종 승인하며, 국내 원전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1978년 상업운전을 시작하여 40년간 전력을 공급했던 고리 1호기는 2017년 6월 영구 정지된 후 약 8년 만에 해체 절차에 착수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승인은 단순한 설비 철거를 넘어, 국내 원자력발전의 전 주기 관리 체계를 완성하고 향후 500조 원 규모로 추산되는 글로벌 원전 해체 시장 진출의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는 사용후핵연료 처리, 방사성 폐기물 관리, 안전성 확보 등 풀어야 할 과제들 또한 산적해 있습니다.
고리 1호기, 한국 원전 해체의 첫걸음
역사적 배경 및 영구정지 과정
고리 1호기는 1971년 첫 삽을 뜨고 1978년 4월 29일 상업 운전을 시작하며 대한민국의 원자력 시대를 열었습니다. 가압경수로 방식의 전기출력 595MWe(또는 587MWe)급 원전으로, 40여 년간 부산, 울산, 경남 지역을 넘어 대한민국 전체에 전력을 공급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2007년 계속운전 허가를 받아 운영되던 고리 1호기는 2017년 6월 영구 정지되었으며, 이후 해체계획서 수립 및 규제기관의 기술 검토와 보완 과정을 거쳐 2024년 6월 26일 원안위로부터 최종 해체 승인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는 2015년 영구정지 결정 후 10년 만에, 그리고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2021년 5월 해체계획서를 제출한 지 약 4년 만의 결과입니다.

해체 계획 및 예상 기간
한수원은 이번 승인을 계기로 12년에 걸쳐 고리 1호기를 단계적으로 해체하고 부지를 복원할 계획입니다. 해체 사업은 크게 '사전 준비', '영구정지 관리 및 해체준비', '해체 착수 및 비방사선구역 해체', '오염구역 해체', '부지 복원'의 순으로 추진됩니다. 한수원은 다음 달부터 터빈 건물 내 설비, 복수탈염 설비, 옥외탱크 등 비방사선 구역 내부의 설비부터 순차적으로 해체 작업에 착수할 예정입니다. 특히 2031년까지 사용후핵연료 반출을 완료한 뒤, 2035년 부지 복원에 착수하고 2037년에 최종적인 원전 해체 종료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전체 해체 기간은 통상 15년 안팎으로 추산되며, 당초 정부가 제시했던 2032년보다 늦어진 2040년 가까이 완료될 것으로 보입니다.
해체 비용 및 재원 마련
고리 1호기 원전 해체에 소요될 총비용은 약 1조 713억 원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원안위의 심사 결과에 따르면, 한수원은 해체 업무 전담 조직 3개에 108명을 운영하고 있으며, 지난해 기준으로 9,064억 원을 충당부채 형태로 현금 적립하는 등 재원 마련 또한 적합하게 이루어져 있다고 평가되었습니다. 해체 진행 과정에서는 중준위 65톤, 저준위 8,941톤, 극저준위 4,315톤, 자체 처분 15만 8,387톤 등 총 17만 1,708톤의 폐기물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되며, 이에 대한 고체, 액체, 기체, 혼합 폐기물별 관리 계획도 이미 마련된 상태입니다.
원전 해체 과정의 핵심 과제와 논란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
고리 1호기 해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어려운 과제는 사용후핵연료 처분 문제입니다. 현재 습식 저장조 안에 485다발의 사용후핵연료가 꽉 찬 상태로 보관되어 있으며, 이를 우선 임시 저장시설로 옮겨야만 원자력 압력용기 등 다른 고준위 시설 해체가 가능합니다. 한수원은 부지 내 건식저장시설을 지어 2031년쯤 완공될 예정이라고 밝혔으나, 임시 저장시설이며 영구 처분시설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2060년으로, 중간 저장시설은 2050년으로 계획되어 있어 시기적 불확실성이 큽니다. 이처럼 사용후핵연료가 원전 터에 그대로 남게 되고, 앞으로 2~3차례 더 옮겨야 하는 상황은 "사실상 반쪽짜리 복원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비판을 낳고 있으며, 환경 및 탈핵 단체들은 고리원전 부지가 사실상 핵폐기장이 될 것을 우려하며 건식저장시설 설치 자체를 반대하고 있습니다.

방사성 폐기물 관리 및 안전성
고리 1호기 해체는 방사성 물질을 다루는 작업인 만큼, 안전성 확보가 최우선 과제로 꼽힙니다. 한수원은 방사선 안전관리와 환경보호, 지역과의 소통을 최우선 핵심 원칙으로 삼고 해체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입니다. 심사 결과에 따르면, 해체 중 비정상 사고 발생 시 종사자와 주민의 예상 피폭선량도 법적 안전기준인 선량한도 미만인 것으로 평가되어 안전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결론 내려졌습니다. 그러나 환경단체들은 고리 1호기 수조에 있는 냉각수나 방사성 폐기물을 어떻게 안전하게 처리할지가 해체 과정의 가장 큰 관건이며, 그 과정에서 토양 복원 등 종합적인 고려가 필요하다고 지적하며 지속적인 감시와 투명한 정보 공개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원전 해체, 새로운 산업의 기회인가?
글로벌 원전 해체 시장의 잠재력
고리 1호기의 성공적인 원전 해체는 한국이 약 500조 원에서 550조 원으로 추산되는 글로벌 원전 해체 시장에서 선도적인 위치를 점할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영구 정지 원전은 214기에 이르며, 2050년까지 총 588기의 원전이 영구 정지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미국, 독일, 일본, 스위스 등 4개국만이 원전 해체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이 중 고리 1호기와 같은 대형 상업용 원전 해체 경험이 있는 국가는 미국이 유일합니다. 이는 한국이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큰 잠재력을 의미합니다.

한국의 기술력 및 산업 생태계 조성
한국은 현재 원전 해체를 위한 핵심 기반 기술 총 96개를 확보한 상태입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이 38개, 한수원이 58개의 상용화 기술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고리 1호기 해체는 단순한 설비 철거를 넘어 국내 해체기술 내재화, 전문인력 양성, 그리고 원전 해체 산업 생태계 조성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이번 경험을 통해 한국은 원전 건설부터 운영, 그리고 해체까지 원전 산업의 전 주기 관리 체계를 갖춘 나라로 도약하게 될 것으로 평가됩니다. 이는 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전 수출, 루마니아 체르나보더 원전 설비 개선 사업 등 전방 산업 수출에 이어 후방 산업인 해체 분야까지 글로벌 경쟁력을 확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해외 시장 진출의 시험대
고리 1호기 원전 해체 사업은 향후 글로벌 해체 시장 진출의 시험 무대가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실제 해체 경험과 기술 노하우를 축적함으로써, 한국은 첨단 기술산업의 테스트베드이자 수출 산업의 전초기지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됩니다. 이를 위해 한수원은 해외 전문기관과의 교류를 활성화하고 관련 전문가를 양성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원전 해체 산업은 이제 막 첫걸음을 뗀 만큼, 단순한 기술 확보를 넘어 제도 정비, 인력 양성, 산업 생태계 전반의 체계적인 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특히 연구개발(R&D) 예산 확대와 함께 이미 해체 경험이 있는 국가들과의 국제협력 강화가 중요한 과제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남은 고리 2, 3, 4호기의 운명과 과제
계속운전 심사 현황
고리 1호기의 해체 승인과 더불어, 같은 부지에 위치하며 비슷한 시기에 가동을 시작한 고리 2·3·4호기의 운명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고리 2호기는 2023년 4월, 3호기는 지난해 9월 가동을 중단했으며, 현재는 4호기만 가동 중이지만 곧 설계수명이 종료됩니다. 이에 따라 세 기 모두 설계수명이 끝나도 가동을 연장하는 '계속운전'을 신청하여 현재 심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계속운전' 심사는 주기적 안전성 평가, 최종 안전성 분석, 방사선환경평가와 공청회 등 3단계로 진행되며,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최종 심의를 거쳐 결정됩니다. 고리 2호기의 심사 결과는 이르면 상반기에, 고리 3·4호기에 대한 심사는 연말 중으로 판가름 날 전망입니다.

에너지 수요와 안전성 논란의 교차점
전문가들은 신규 원전 건설에 드는 비용과 기간을 감안하고, 늘어나는 에너지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서 '계속운전'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입니다. 특히 이산화탄소 배출량 목표를 맞추는 데 있어 원자력 발전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나 환경단체와 주민들을 중심으로 노후한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부산환경운동연합 등은 수명을 다한 한빛원전의 가동 중단이 지역 재생에너지 전력계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수명 연장 절차 중단을 촉구하는 등, 안전과 경제성, 환경이라는 복합적인 요소들이 얽혀 있습니다.
정부의 정책적 판단의 중요성
고리 2·3·4호기의 계속운전 여부는 원전에 대한 안전성 평가와 함께 각계 의견 수렴, 그리고 정부의 정책적 판단 등이 종합적으로 반영되어 결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고리 1호기 원전 해체 경험은 향후 노후 원전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 있어 중요한 선례가 될 것이며, 한국의 에너지 정책 방향에 큰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결론
고리 1호기의 원전 해체 승인은 국내 원자력 역사에 기념비적인 순간이자, 동시에 수많은 과제와 기회를 안고 있는 복합적인 사건입니다. 사용후핵연료 처리와 같은 난제 해결은 물론, 투명한 정보 공개와 지역사회와의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국민적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 성공적인 원전 해체의 필수 조건입니다. 이 과정에서 얻게 될 기술력과 경험은 한국이 미래 글로벌 원전 해체 시장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중요한 발판이 될 것입니다. 고리 1호기의 사례는 단순히 노후 원전을 없애는 것을 넘어, 미래 에너지 시스템과 안전 관리, 그리고 새로운 산업 생태계 구축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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